가을의 문턱에 서서

일상의 삶 | 2000/09/13 10:10 | 엔하늘
가을이다. 아침이면 모락모락 피어나는 하얀 입김에서, 날이 갈수록 고개를 숙이며 황금 빛 물결을 자아내는 벼에서, 그리고 한없이 높아지는 푸른 하늘에서 나는 가을을 보았다. 올해도 이렇게 가을은 우리에게 찾아왔다.

가을이면 언제나 떨어져 있는 낙엽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간 낙엽 하나에도 수많은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흔적을 통해 나만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새 하늘에선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여름 내 뜨거웠던 열기도 가을비에 수그러든다. 언젠가 가을비를 맞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렇게 멋진 가을만 계속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가을이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우리들을 숨 못 쉬는 더움 속으로 몰아넣었던 여름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자신을 낮추며 서로를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잊혀진 오랜 기억 중 ‘운동회’란 걸 찾아냈다. 불과 4년 전의 나는 오늘 학교 운동장에서 열심히 운동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큰 공 굴리기, 콩 주머니 던지기, 차전놀이, 육상 계주 그리고 점심시간이면 부모님과 함께 돗자리를 펴고 맛있게 먹었던 동그란 김밥. 운동회를 할 때마다 팔던 화약 총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총싸움을 하며 재밌게 놀았던 그 시절은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다. 그 아름답던 추억들도 이젠 내 기억 속의 깊은 곳으로 점점 파고만 든다. 고등학생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친구들과 함께 땀흘리며 뛰어 놀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6학년 때 마지막으로 운동회를 치른 후 써 놓았던 글을 읽어보았다. 삐뚤삐뚤한 내 글씨에 벌써 웃음이 튀어 나왔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맑고 순수한 것 같았다. 지금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그 땐 아무런 편견과 선입관 없이 생각할 수 있었던 걸 보면 나도 벌써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 많이 오염되어 버린 것 같다. 그 만큼 성숙했다는 얘기도 되겠지만......

이젠 정말 가을이다. 이런 가을엔 때론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향긋한 모닝커피 한잔과 함께 아름다웠던 추억,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2000. 9. 13.
꿈꾸는 십대에 썻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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