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이라는 것은 상당히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개념이다. 갑이 을보다 가난하다면 갑이 빈곤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을이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라면 갑이나 을 모두 빈곤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빈곤은 좁게는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말하는 노숙자, 실업자,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의 계층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고 넓게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쟁 및 식량부족으로 인한 기아, 질병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빈곤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역주변 등에서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노숙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식사를 제공한다거나 매년 연말이 되면 구세군을 통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한다거나 혹은 식량부족으로 굶어 죽어가는 극빈국에 식량 및 비료 등을 국가나 기업, 개인의 차원에서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빈곤으로 인한 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의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결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것은 일종의 '밑빠진 독에 물붓기'이기 때문이다. 식량지원을 받으면 당장의 배고픔은 해결할 수 있을지몰라도 그 식량이 동이나면 또다시 식량을 지원받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과연 빈곤에 처한 이들을 돕는 진정한 방법이라 할 수 있는가?

  이와 더불어 빈곤의 특성을 한가지 언급하자면 '빈곤'이라는 것은 되풀이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자녀는 가난을 물려받기 쉽다. 이는 이미 여러 연구들이 입증하고 있다. 바로 빈곤한 사람들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부유한 집안의 자녀는 학교의 정규교육 이외에도 과외나 학원교육 등을 받으며 상급 학교에 진학하고 이에 따라 사회, 정치적으로 높은 위치에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므로 학교에 다니기에 급급하고 결국 노동계층의 삶을 되풀이하게 된다.

  이러한 계층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 교육의 결과적 평등이 필요할 수도 있다. 교육의 결과적 평등이란 국가의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울 수 있도록 가정배경으로 인한 불이익은 사회가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역차별적인 정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부유계층과 빈곤계층의 간극은 더욱더 벌어지고 갈등은 심화될 수 밖에 없다. 국가적인 상황으로 인해 빈곤한 국가라면 물자적인 지원 이외에도 교육을 통해 빈곤의 재생산이 더이상은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시설을 설립하고 인적자원을 투입하는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빈곤하길 원해서 빈곤해진 사람은 없다.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어떤 배경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수천억원대의 재산이 이미 자기의 것이나 다름 없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부모가 키워낼 능력이 되지 않아 고아원에 버려지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의지에 의해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교육은 다르다. 교육은 태생적으로 주어진 환경을 자신의 힘과 의지로 바꾸어낼 수 있는 열쇠이다. 그래서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 제도적 지원과 물질적 지원에 더불어 빈곤계층 당사자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해서 교육을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구상에서 '빈곤'이란 찾아볼 수 없는 그저 역사속의 한 장면에 불과한 그런 때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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