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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0 03:35

종교를 찾아서 사색노트2010/02/20 03:35

  2010년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마 '종교'가 아닐까 한다. 그동안 '무신론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지만 이내 내가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난 단지 유신론자가 아니었을 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할 만한 그 어떤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사이로 내 인생의 스위치를 옮기고 깊은 생각에 빠지기로 결심한다.

  '왜 하필 이제서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떤 일이든 계기는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솔직히 고백하건데 '이것이야 말로 신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닐까?'하는 감상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사고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하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를 받기 전 배심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숨을 쉬는 한, 그리고 지적 능력을 잃지 않는 한, 철학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훈계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진실을 명료하게 밝히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을 거요...... 그러니 여러분...... 그대들이 나를 사면하든 말든, 나는 나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그대들은 알게 될 것이오. 일백 번을 더 고쳐 죽는다 해도 말이오.


  소크라테스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현실의 앞에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진리'였기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 심지어 중요한 지위에 올라 있는 사람, 아니면 몇 세기 동안 절대 다수에게 지켜져 내려오는 신념을 굳게 신봉하는 사람일지라도 어떤 일에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틀릴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신념을 논리적으로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믿는다고 해도, 오랫동안 믿어져 왔다고 해도 그릇된 점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임에 틀림없고, 이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내가 '깨어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유도 곧 '진리'를 찾기 위함이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이나 사고의 체계와는 다른 어떤 것을 만났을 때, 그리고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기존의 '진리'는 수정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더이상 논의의 여지가 없을 때까지 그러한 과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소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깨어있는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만일 기존의 생각에 그릇됨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고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오만이며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자세를 지내고 있는 내가 '신'이라는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이 '새로운 어떤 것'이 진리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것이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것인지 확인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하지만 신의 존재여부에 대해 내가 증명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 어느 누구도 이것을 증명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직선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여기에 마찬가지로 부피가 없는 지렁이 한 마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2차원의 세계이다. 이 지렁이는 결코 3차원 세계에 있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없다. 지적 능력이 있는 지렁이라면 3차원 세계에 대해서 상상은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상상일 뿐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아마 3차원 세계가 아닌 다차원 세계에 존재할 것이며 결국 이런식의 주장대로라면 신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우리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차원의 얘기를 떠나서, 대립하고 있는 두 집단, 즉 종교와 과학 모두 신이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 과학의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아직은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존재한다. 아주 어렸을 때 나는, 과학은 뭐든지 해결할 수 있는 '만능키'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첫번째 좌절을 느끼게 되었다. 과학이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이다.

  나는 종교인도 아니고, 신학자도 아니며 그렇다고 과학자도 아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그 어떤 전문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논지를 풀어나간다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내가 몇 권의 책을 더 읽는다고 해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결의 실마리를 가지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내가 주장하는 논리에 비약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변수들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러한 과정을 거치려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신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냥 믿는 수 밖에 없습니다. 믿으세요.'라는 말만 믿고 믿음을 키워나가는 것은 너무 맹목적이지 않은가? 그것은 그저 믿음을 위한 믿음일 뿐이다. 이러한 믿음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순수 의견(true opinion)'과 다를 바 없다. 순수 의견이란 직관에서 나온 막연한 진실을 말하는데 이러한 신념은 논리적인 대응에 맥없이 쓰러질 수 밖에 없다. 순수 의견과 대비되는 개념이 바로 '지식'인데 지식은 반대 입장들에 대한 이해까지도 포함하고 있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신에 대한 '순수 의견'이 아닌 '지식'을 지니려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출발선상에 서 있는 나에게는 흐릿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결론이 있다. '신의 존재 여부는 그 누구도 증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판단은 각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의 예상일 뿐이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종교를 찾아 떠나는 이러한 과정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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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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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눈뜬봉사 2010/03/02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리 아픈데....